오토 와그너가 쏘아 올린 산업디자인의 전신 빈 분리파 -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 제체시온(Secession·빈 분리파)의 모토 - "


자유로운 예술, 자유로이 예술을 향유하는 행동. 오늘날의 당신은 어떠한가? 예로부터 예술의 전위적인 시도에 의해 엎치락뒤치락 성장을 일궈왔다. 예술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도 예외가 아닐 터.


여기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예술가 협회를 등에 지고 성스러운 봄 Ver Sacrum을 맞이한 이들이 있다. 

회화와 건축을 넘나들며 가장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했던 전위예술가 빈 분리파의 집, 제체시온에서 그들을 만나보자.

제체시온의 예술가들. 왕좌에 앉은 양 양팔을 걸치고 있는 클림트의 모습이 눈에 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정식 명칭은 제치시온게보이데 Secessionsgebaude. 주류에서 환영받지 못한 자유로운 영혼들을 보듬으려 마련된 전시관. 도시의 후원으로 일궈진 곳이니 비주류라고 하기에 너무 웅장하다고 섣불리 비난 말라. 


황금빛 월계수 잎으로 구성된 커다란 돔 아래에는 이들의 모토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건축물, 우리에게는 클래식일 수 있지만 당대에는 '너무 화려하다'라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나팔바지 촌스럽다던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부츠컷을 찾듯이 시대의 '심미안'은 계속해서 바뀌는 법.


 분리파의 집. 출처: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마크 어빙

반구의 조형물이 눈에 띄는 외관은 20세기 초두 건축계에 큰 영향을 끼친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의 선두하에 지어졌으며, 내부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콜로만 모제가 양 팔을 걷고 나서 일궈내었다.


잠깐, 클림트는 익숙하지만 콜로만 모제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가 낯선 당신을 위해 본견적으로 제체시온에 들어서기 전 잠깐 오토 바그너 이야기를 하려 한다. 

분리파의 초석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니 한 번 진득이 스크롤을 내려보시라.


 그의 철교 디자인, 출처: Wikimedia Commons

건축가 오토 바그너 Otto Wagner는 1890년 산업 기술을 토대로 한 비엔나 도시 계획안을 통해 비엔나를 근대적 도시의 모습으로 일궈내었다.

건축을 통해 표현된 기술. 바그너는 이뿐만 아니라 비엔나 순수 예술 아카데미 건축 교수로서 근대 건축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그는 역사주의적 경향을 부정하며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주장 아래 실용적인 양식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그가 고안한 가구 디자인에서도 두각을 드러낸다.


안락의자, 출처: 네이버 미술백과

실용 목적에 의해 규정된 재료와 구조, 디자인은 간소화된 형태로 그가 주장하는 근대 건축의 4가지 원칙이 잘 반영되어 있다.

첫째 목적의 파악, 둘째 재료의 선택, 셋째 단순하고 경제적인 구조, 넷째 앞선 세 가지와 같은 결과로 나타날 형태.

화려하지 않지만 시선이 오래 머물며 사용성이 높아 오래 머물게 되는 가구.

실용성을 주창한 바그너의 탁월한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환영받으며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자 그럼,  오토 바그너. 그의 예술관과 빈 분리파와의 모토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렴풋이 예상이 가는가? 바그너는 기존의 갖춘 양식에서 벗어나 실용성을 주축으로 한 디자인을 추구하였으므로 이는 진보 혹은 자유라 일컫을 수 있겠다. 

자유, 빈 분리파가 외치던 자유. 바그너의 수제자가 다수 포진해있는 분리파에게 가장 알맞은 신조가 아닐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그의 수제자로는 올브리히와 호프만, 콜로만이 있다.



올브리히가 건축한 제체시온은 얼핏 봐선 화려한 외향에 감탄하게 되지만 곳곳에 자연스레 어우러진 빈 분리파의 정체성에 그가 바그너의 수제자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는 분리파의 총체적 예술 작품이라는 세계관을 표현하고자 전시관 현관 위 회화, 건축, 조각의 세 인물 얼굴 부조상을 새기고 학파의 신조를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위치해 자연스레 분리파의 목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지도록 하였다.

분리파는 오스트리아의 아르 누보 운동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순수 예술의 틀에서 벗어나 그래픽과 장식 디자인, 가구 등 일상 기능 용품 디자인과 건축으로 예술과 非 예술이라 여겼던 사물에 대한 경계를 허문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응용 예술이라는 익숙한 용어로 불리고 있지만 당대에는 센세이션한 시도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당대의 응용 예술은 오늘날 개념과 조금 달리 조금 더 상업적이고 적극적인 면모가 있었는데, 이를 다른 말로 '장식 예술'로 일컬었다고 표현하면 단번에 이해가 될 터.


 요제프 호프만, 등 받침 조절 의자. 출처: sailko @Wikimedia Commons

이들은 해당 작품을 미술관에서 끌어내 일반 부티크 그리고 가정집으로 밀어내었다. 그리고 사용되는 동시에 전시되기를, 예술품이 곳곳에 자리해 그 견고하고 고결한 '예술'의 개념을 흩트리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산업 디자인이다. 물론 응용미술은 산업 디자인보다 더 넓은 의미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의 전신이라는 의견에는 이견이 없다. 

이들의 작품은 절제된 외관에 들어찬 기하학적인 면모 혹은 감각적인 외관에 높은 사용성. 상반되는 가치가 함께 자리해 사람들을 설득한다. 

'이상'했던 것이 '이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전위적인 분리파에 드러누워버린다.


"분리파를 떼어낸 건, 순수 예술이다."


분리파는 스스로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 분리된 동시에  순수 예술로부터 분리된 개념이다. 서로가 서로를 거부해 이리도 좋은 작품을 남기다니, 우리로썬 그저 감사할 따름.

거창한 이름 아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가진 학파와 달리 분리파는 자신들이 주창했던 실용성에 알맞게 학파 이름 또한 명료하다. 

분리파. 한편으로는 구조적 건축 양식을 고집하는 동시에 예술에 산업 시대 문물을 사용하고자 했던 오토 와그너. 그들은 다가온 오늘날에 알맞은 예술을 하는 것은 '자유'라고 표현했다.

구스타프 클림트, 약한 자들의 고뇌. 출처: 네이버 미술 백과


훗날 요즈음 시대를 일컬어 '자유'로이 예술이 행해졌다. 일컬을 수 있을까?

보다 능동적인 사용자인 우리는 동시에 예술가이기도 하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 당장 가장 좋아하는 것을 통해 행해보라. 여유가 자유의 조건이 되어버린 오늘날 예술에게 체력을 투자하는 것 자체가 전위일 수 있지만. 


약한 자들은 계속해서 고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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